[기고] 퇴직연금, 노후소득보장체계 핵심으로 성장하려면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은 역시 돈과 건강이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 모든 사회보험 및 복지제도의 목표는 소득 및 건강 보장으로 귀결된다. 부과 방식의 공적 기능보다는 적립 방식의 시장 기능이 강화되는 추세일 뿐, 종착역은 변함없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나라는 인구 고령화로 인해 공적연금 중심의 노후소득보장체계를 사적연금으로, 그중에서도 퇴직연금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소득 보장 측면에서는 대부분 공사연금을 연계한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시작에 불과할 뿐 향후 퇴직연금제도가 노후소득보장체계의 핵심 제도로 성장할 것이다. 실제로 호주는 인구 고령화가 두려워 국가의 노후소득보장체계를 완전히 퇴직연금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선언한 지 오래다. 

 

하지만 세계에서 성격 급하기로 유명한 한국은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여유를 부린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반면 생산가능인구는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인상을 고민 중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퇴직연금의 제도 개선에도 여유를 부린다. ‘뿌리가 깊어야 잎이 무성하다’라는 뜻의 심근무엽(深根茂葉)처럼 기초가 중요하다. 연금의 기초 원칙은 ‘가능한 많은 사람이 가입하고, 가능한 오래 가입하며, 가능한 오래 수령하는 것’ 등 3가지다. 

 

한국은 ‘가능한 많은 사람이 가입한다’는 연금의 첫 번째 원칙부터 지켜지지 않고 있다. 통계청의 가장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전체 기업 중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은 27.2%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대기업 중심으로만 도입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11.3%, 5~9인 사업장은 31.5%에 불과하다. 반면 100~299인 사업장은 83.3%, 300인 이상 사업장은 90.8%가 퇴직연금을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가능한 오래 가입해야 한다’는 두 번째 원칙도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 근로자의 평균 근속 기간은 6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직하더라도 퇴직연금제도의 연속성과 적립금의 통산성을 강화하고자 개인형퇴직연금(IRP)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직 시 적립금을 IRP로 이전한 후 근로자 대부분이 해지한다. 별다른 제재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퇴직금제도의 중간 정산 때문에 퇴직금이 노후자산으로 활용되지 않고 조기 소진되는 단점을 극복하고자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으나 퇴직연금제도에서 IRP 해지는 퇴직금 제도에서의 중간 정산보다 쉽다. 

 

뿐만 아니라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소득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에만 중도인출을 허용하고 있는 주요국과 달리 한국의 퇴직연금제도는 중도인출 허용 범위가 넓다. 세부 규정도 미흡해 적립금을 중도인출하는 가입자와 금액이 매년 급증해왔다. 실제로 2017년 적립금을 중도인출한 가입자는 전년 대비 29.2% 증가했고, 인출금액은 무려 38.4% 증가했다. 

 

다행히 정부가 근로자를 위해 중도인출을 제한하는 예방주사를 놓아주겠다고 하지만 오히려 근로자는 주사가 싫다고 한다. 장기간 가입해야 수익률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되는데, 잠시 머물러 있는 동안 수익률은 높여달라고 떼를 쓴다. 역시 ‘가능한 오래 가입해야 한다’는 원칙도 지켜지지 않는다. 

 

‘가능한 오래 수령하는 것’이라는 마지막 원칙 역시 한국에서는 먼 얘기다. 과거 56년 동안(1960~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기대수명은 12.6세 증가한 반면 한국의 기대수명은 무려 30세나 증가했다. 이제 한국인들은 주요 선진국의 국민들보다 더 오래 산다. 장기화해가는 은퇴 기간 안정적인 소득흐름을 확보하는 현명한 방법이 바로 연금수령이다. 하지만 우리 퇴직연금 제도는 가입 시 제공하는 세제 혜택은 적고 수령할 때는 과도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체계다. 심지어 일시금으로 수령해도 엄청난 세제혜택을 제공한다. 가입 시 충분한 세제혜택을 제공해 가능한 많은 국민이 가입하게 하고, 일시금 수령 시 높은 세금을 부과해 가능한 오랫동안 퇴직급여를 수령하도록 유인하는 주요국과 반대다.  

 

결국 ‘가능한 많은 사람이 가입하고, 가능한 오래 가입하며, 가능한 오래 수령해야 한다’는 연금의 모든 기본 원칙 중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국민의 노후를 걱정하면서 퇴직연금을 연금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개선 방안들이 제안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퇴직연금제도를 진정한 연금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즉 기본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제안만큼은 서둘러 우리 사회에 투영시켜야 한다. 

 

<김대환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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