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노트] 카드업계를 위한 항변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
  • 정호원 세계미디어플러스 본부장
    “작년에도 수수료를 인하했는데 또 인하해야 한다고 하니...답답합니다”

    얼마 전 만난 한 카드사 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카드 수수료 인하와 관련한 얘기를 꺼내자 한숨을 내쉬었다. 문 대통령이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대놓고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만 끓이는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의 또 다른 공약사항인 이동통신 기본요금 폐지에 대해 통신업계가 공공연하게 반대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카드업계가 간이 작아서 아무 소리도 못내고 숨을 죽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카드 수수료율은 법률로써 강제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즉, 정부와 정치권이 마음만 먹으면 법령 개정을 통해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관철할 수 있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제18조의3 제3항은 영세한 중소신용카드가맹점에 대하여 금융위원회가 정하는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법 시행령 제6조의13에서는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영세 중소신용카드가맹점을 연간 매출액 3억원 이하 가맹점으로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동 시행령은 연간 매출액을 ‘2억원 이하’와 ‘2억원 초과 3억원 이하’로 구분하여 우대 수수료율을 달리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민간영역의 거래 수수료율을 법령으로 규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신용카드 의무수납제를 적용하는 상황에서 영세 가맹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신용카드 의무수납제란 신용카드로 거래 한다는 이유로 결제를 거절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하도록 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적용돼야 할 우대 수수료율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선거 때만 되면 소상공인들의 표를 의식해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공약으로 내거는 등 정치권의 지속적인 압박 때문이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우대 수수료율이 적용되는 영세 중소가맹점 범위가 확대되고 우대수수료율도 계속 낮아졌다. 2007년 신용카드 수수료 체계 합리화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당시 연매출 4800만원 미만이던 영세 중소가맹점 기준이 현재는 3억원 이하로 확대됐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시행되면 그 범위는 연매출 5억원 이하로 늘어나게 된다. 우대 수수료율도 2.0~3.6%이었으나 계속 내려가면서 현재는 연매출 2억원 이하는 0.8%, 2억원 초과 3억원 이하는 1.3%까지 낮아졌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의 공약이 실행되면 연매출 3억원 이하는 0.8%, 3억원 초과 5억원 이하는 1%로 낮아지게 된다. 카드업계는 이 공약이 적용되면 4000억~5500억원의 수입이 감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가맹점 비율이 현재 전체 가맹점의 77%에서 87%로 높아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는 가맹점이 대다수가 되는 기형적 구조가 되는 것이다.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로 경기 침체에다 과당경쟁으로 신음하는 중소 상공인을 지원한다는 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선거 때만 되면 표를 얻기 위한 손쉬운 방법의 하나로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실제 지난 대선에서 주요 후보 모두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처럼 신용카드 수수료율이 정치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시장원리에 어긋날 뿐아니라 그 자체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일방적으로 법률로 민간영역의 거래 수수료를 결정하는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규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로 수입이 줄게되면 카드사들은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결국 가입자들에게 주던 혜택을 줄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카드사도 일부 희생을 감수하겠지만, 가맹점 수수료 인하의 상당부분을 다수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셈이 된다.

    또 신용카드와 관련해 체계적이고 일관된 정책 집행이 아니라 선거공약 이행을 위한 임시방편적 정책이 남발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잖아도 금융위원회가 카드사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당근책을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관치경제’의 폐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책의 타당성에 관한 충분한 의견수렴과 검증을 거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약 이행을 전제로 관련 정책을 꿰어 맞추는 방식이 되다보니 우대 수수료 적용대상이 대다수가 되는 기형적 구조가 탄생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카드업계로서는 핀테크 등 새로운 서비스의 개발보다 대 정치권 로비에 더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다. 카드업계가 소속된 여신금융협회는 주요 대선 후보들이 모두 카드 수수료율 인하 공약을 내놓자 답답했던지 지난 4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500개 영세 가맹점주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세 가맹점주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경기침체와 임대료를 가장 많이 꼽았다. 카드 수수료가 영세 상인들이 겪는 어려움의 주요 원인이 아니라는 논리다.

    그 때문에 상당수 전문가들이 이참에 그 효용을 다한 카드 의무수납제를 폐지하여 가맹점의 협상력을 높임으로써 카드사와 가맹점간 협상에 의해 수수료율이 결정되도록 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카드사 관계자도 매년 카드 수수료율 인하가 이슈가 되는 것에 지친 듯 “차라리 의무수납제를 폐지하고 자율적인 협상에 의해 수수료율을 정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번번이 카드업계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권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룰을 만들고 시장 질서가 유지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정치권이 영세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율을 정해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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