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 기재부가 저지르고 치우는 건 금융위가 한다?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
'초이노믹스' 탓 가계부채 급증…금융위, 가계부채 대책 뒤늦게 '골몰'
  • 세계파이낸스 안재성 기자.
    최근 가계부채가 눈덩어리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한국 경제의 ‘암덩어리’로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당장 가계부채 때문에 소비 부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 금리 상승기에 대규모 부실위험까지 점쳐지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지난해부터 각종 가계부채 대책을 연달아 발표, 가계부채 증가세 잡기에 한창이다.

    아이러니컬한 부분은 가계부채를 이토록 악화시킨 주 책임은 기획재정부에게 돌아가야 할 텐데, 정작 머리를 싸매면서 대책 마련에 골몰하는 부서는 금융위원회란 점이다. 그야말로 ‘일 저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형국이다.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핵심요인으로 기재부의 경제정책, 즉 ‘초이노믹스’가 거론된다.

    지난 2014년 7월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저금리와 부동산 시장 부양으로 내수경기를 견인하겠다”며 세칭 ‘초이노믹스’를 추진했다. 주요 내용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및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부동산 양도세 일시적 면제, 부동산 중과세 폐지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최 부총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정정책뿐 아니라 통화정책도 중요하다”며 여러 차례 한국은행을 압박, 결국 한은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인하되도록 유도했다.

    이후 가계부채는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 전까지 5~6% 수준이던 가계부채 증가율이 ‘초이노믹스’ 시행 후에는 10.3%~11.4%로 확대됐다.

    재작년 1100조와 1200조선을 한꺼번에 넘더니 급기야 지난해에는 141조2000억원이나 폭증, 가계부채 총액이 1344조3000억원(지난해말 기준)에 달했다. 사상 최대 증가폭이다.

    늘어난 가계의 원리금상환액 부담은 당장 소비를 압박하고 있다.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은 지난 2010년 77.3%를 정점으로 매년 하락세를 그려 지난해에는 71.5%까지 내려앉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보고서를 통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가 1 증가할 때마다 민간소비가 0.6씩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가계부채 때문에 올해 소비증가율이 0.63%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종전보다 0.3%포인트 낮춘 2.5%로 제시하면서 "가계의 소득여건 개선 미흡, 원리금 상환 부담 가중 등으로 민간소비 증가세가 것"이라고 전망했다.

    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가계부채는 시스템적 리스크로 연결될 위험까지 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가계부채가 대거 부실화될 경우 금융권은 물론 실물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지난해 6월말 기준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0%에 달했다. 기업부채까지 합산한 민간부채 비율은 197.8%(지난해 9월말 기준)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는 “아직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 시스템적 리스크로 발전할 위험은 낮다”며 불안감을 희석시키려 노력 중이지만,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정부가 내세우는 ‘관리 가능한 수준’의 주 근거는 낮은 연체율이다. 지난 1월말 현재 국내은행의 대출 연체율은 0.53%, 가계대출 연체율은 0.28%로 아직 크게 문제시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해말에 이어 이번달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시중금리가 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점이 문제다. 이미 지난 1월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연 3.39%)는 전월보다 0.1%포인트 올랐으며, 3월 들어서도 각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은이 연준을 따라갈 경우 금리 오름세가 더 가팔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중금리 상승은 곧 대출 부실 위험 확대로 연결된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확한 수치는 전망하기 힘들지만, 금리 상승이 대출 연체율 확대를 유도할 것”이라며 “이는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다중채무자 등 취약계층부터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소득 5분위 가구(소득 상위 20%)의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이 26.2%인 데 반해 소득 1분위 가구(소득 하위 20%)는 55.8%로 2배가 넘었다. 그만큼 금리 오름세에 취약한 셈이다.

    때문에 금융위는 고정금리 및 분할상환대출 비중 목표치 확대,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 및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집단대출 규제 강화, 2금융권 건전성관리 강화 등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가계부채 급증세를 잡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가계부채를 엉망으로 만든 곳은 기재부인데, 수선하는 역할은 금융위가 맡고 있으니 신이 날 리가 없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기재부는 경제성장률에만 집착한다”며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기재부가 조금 더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현재의 가계부채 대책은 그저 ‘대출하지 마라’로 금융사를 윽박지르는 수준”이라며 “이런 대응요법으로 한계가 뚜렷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가계부채를 확실히 잡기 위해서는 기재부가 나서서 LTV와 DTI를 재차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제왕적 대통령제’가 화두로 떠올라 이를 개선하기 위한 개헌도 논의되고 있다.

    행정부에서는 ‘제왕적 기재부’란 말이 종종 나온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쳐 공룡처럼 성장한 기재부가 예산과 경제정책 관련 권한을 모두 틀어쥐고 있는 등 지나치게 비대하고 강력하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기재부를 기획예산 분야와 재정금융 분야로 쪼개야 한다”는 주장이 야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오는 5월 9일 조기 대통령선거가 시행된다. 새로운 수장이 등장하면 정부 조직도도 바뀔 것이다. 부디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기대한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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